본문 바로가기

Litter box

가벼운 권태

 오전 근무가 있는 날은 새벽 네시에 눈을 뜬다. 밥보다 잠이 중요하다 싶으면 30분은 더 잘 수 있지만, 일을 하려면 기운도 있어야지. 한국에서 나고 한국에서 자란 한국놈이다보니 역시 아침엔 빵보다는 밥이 좋다. 그래야 뭔가 든든히 먹은 것 같고, 점심까지 버티기에 충분한 에너지를 얻는 것 같이 느껴지기 때문에.

 날씨가 좋은 날은 자전거를 타고, 비가 오는 날은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한다. 한국에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내가 사는 이 곳에서는 버스나 자전거나 걸리는 시간이 그리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버스가 둘러가는 것도 없지 않겠지만, 빨리 달리지도 않기 때문에 같은 길을 달려도 버스가 정차하면 자전거가 추월하고, 다시 달리기 시작하면 버스가 추월하며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게 된다. 덕분에 아까 본 사람과 자꾸 눈이 마주치는 경험도 할 수 있고. 출근길 주변엔 온통 나무와 들판들이라 포근한 느낌이다. 떠오르는 태양과 붉게 물드는 동녘을 볼 때마다 마음이 탁 트이는 기분.

 일을 할 때는 최선을 다해서. 나름은 충실하게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의도지만, 주변 친구들이 보기에는 필요 이상으로 부지런을 떤다고 생각을 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제발 좀 앉아서 쉬라는 말을 종종 듣지만, 이것도 병인지라 쉽게 되지는 않는다. 10분쯤 앉아 있으려면 일해야 한다는 강박 비슷한 것을 느낄 정도. 하지만 최근에는 조금씩 피로를 느끼고 있어서, 적당한 선에서 조절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근무 시간은 7시간, 휴식시간 포함해서 총 7시간 30분 정도. 그렇게 일을하고 퇴근길에 오른다.

 집에 돌아와서는 씻어야만 한다. 한겨울에도 왕왕 땀을 흘릴만한 직종이라 샤워는 거의 매일. 그리고는 고파오는 배를 달래준다. 역시 점심에는 육류가 진리! 동그랑땡도 좋고, 수요일이면 집 앞 마트에 오는 푸드 트럭에서 사먹는 닭고기와 학센도 좋다. 이제는 짝으로 사다놔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 맥주 한 병 곁들이면 세상만사 편안.

 그런데 날이 저물어가면 생각이 많아진다. 오늘도 열심히 재미있게 일했고, 맛있는 것도 먹었지만 뭔가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 같은 묘한 느낌에 사로잡히곤 한다. 요 근래에 계속. 뭔가 모를 권태같은 그런 느낌이다. 일을 하고 돌아오면 열심히 일한 만큼 피곤해지게 마련이고, 그러다보면 좀 쉬고 싶은 마음이야 인지상정이겠지. 하지만 일이 내 삶의 모든 것이 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오롯이 나를 위한, 그러면서도 뭔가 보람차고 의미있는 뭔가를 하고 싶다는 욕심과 그 욕심을 채우지 못하게 방해하는 선천적 게으름의 조합에서 오는 감정이 아닐까 생각은 하지만... 열심히 일하고, 잘 쉬고. 그렇지만 이 쉼이 나를 위한 쉼이 아니라 마치 내일의 일을 위한 쉼같은 느낌, 하루 하루가 그저 반복되고 있다는 느낌에 살짝 만족스럽지 못한 나날. 고민은 조금씩 깊어집니다.

 가능하면 가까운 시일 내에, 이 고민에 대한 답을 스스로 내릴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곁에서 힘내라고 말해줄 사람이 없는 외로운 생활이라 스스로에게 이야기 해주련다.

 

 힘내라, 너는 잘 살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