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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서편제(西便制, 2012)

 고등학교 때였던가, 국어 교과서인지 문학 교과서인지 '천년학'이라는 작품이 실렸던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너무 애잔한 느낌,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어떤 여운을 준 그 작품이 나는 너무 좋았지요. 작품의 해석이고 뭐고를 떠나서, 그만큼 무엇을 읽고 좋았던 적은 지금까지도 몇번 없었던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어쩌면 지금의 영화나 소설등의 작품에 대한 제 취향은 그때 그 인상에서 굳어진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깔끔하고 확실하게 결말을 보여주는 작품보다는 잔잔하게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는, 진한 여운을 남기는 그런 작품이 좋습니다. 그런 천년학이 서편제라는 소설의 새로운 각색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던 것은 한참이 지나고 난 후였습니다.


 아내가 내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오랜만의 뮤지컬 관람을 제안했습니다. 제목이 서편제라는 것을 듣고는 적잖이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마침 프리뷰 기간이어서 40%나 할인된 가격이었기에, 평소라면 꿈도 꾸기 힘들었을 VIP 석을 예매하고, 드디어 오늘 관람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간 종종 들리던 어린이 대공원 후문에 위치한 유니버셜 아트 센터에서 공연했는데, 항상 어린이 대공원 동물원을 놀러갈때 지나면서 '저기서 한번 공연을 봤으면 좋겠다'고 하던 바로 그곳이었네요.



 뮤지컬로 접한 서편제는 아주 뮤지컬다운 서편제였습니다.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이 공연에서 서편제다운 소리를 들려주시는 분은 송화(이자람) 한분 뿐이었습다. 다른 노래들은 뭐랄까, 지킬 앤 하이드나 십계 등의 외국의 뮤지컬과는 달리 이국적인 느낌은 들지 않지만 그리 한국적이라고 느껴질만한 음색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평범한 요즘의 대중 가요를 듣는 느낌과 비슷했다고 할까요? 그 점이 아쉽다면 아쉬운 점. 하지만 또 영화만큼 소리하는 부분이 많았다면 관객의 반응이 꼭 긍정적이었을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어서, 적당하다고 할지 어떨지... 저로서는 서편제에 기대한 만큼의 소리를 듣지 못해 아쉽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사실 서편제라고 하는 애절한 느낌의 판소리를 실컷 듣고 싶었거든요. 기대가 너무 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의 많은 부분들을 잘 재현해 내었는데, 특히 과거의 추억들과 현재의 모습이 한 무대 위에서 공존하며 각자의 연기를 하는 부분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화라면 과거 회상 장면이 들어갔을 부분에서, 무대 앞부분은 현재의 이야기가 진행되고 뒤편에서는 과거의 이야기가 흘러가는거죠. 대학로에서 소극장 공연을 자주 보던 내겐 이정도 규모의 한국 뮤지컬은 지난번 '광화문 연가' 이후로 처음이었는데, 무대 장치나 연출이 '이만하면 썩 괜찮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하나를 꼽으라면 2막의 막바지에 나이가 든 동호가 송화를 찾아다니다 결국은 서로 만나 한자락 소리를 풀어내는 장면이었습니다. 영화에서도 참 좋아하는 장면이구요. 회전할 수 있는 무대와 움직이는 막을 잘 활용하고, 무대 위의 여러 인물들이 적절하게 움직이면서 정말 멋진 장면을 만들어 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센터의 특징인지는 모르겠지만, 연주를 해주는 오케스트라가 무대 앞쪽이 아니라 무대 뒤편에서 연주를 해줍니다. 의도된 것인지 아니면 센터가 그렇게 만들어져있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관객석에서는 멀어졌지만 배우들 쪽에서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 오히려 좋은 느낌이었습니다. 무대를 장식하던 빔프로젝트도 괜찮았고, 한국적인 느낌의 음악이 잔잔하게 깔리는 느낌도 좋았고요. 배우들의 옷 역시 과거 한국의 느낌을 잘 가지고 있으면서도 적당히 개량된듯한 느낌이어서, 뮤지컬 무대에 올리기에 적절한 의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보게 된 뮤지컬 공연이었고, 원작이 워낙에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해서 기대가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럽게 보고 나왔습니다. 위에 적은 사소한 아쉬움은 날려버릴 수 있을 정도로 만족스러웠어요!

 하지만 솔직히, 이런 한국적인 느낌의 소재를 다루는 뮤지컬이나 연극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은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비단 한국적인 주제를 다룬 공연이나 영상물 뿐만 아니라, 애초에 판소리라는 한국 특유의 문화에 대한 무관심, 보존하고 발전시키려는 노력의 부재 등이 유난히 슬프게 느껴졌다고 할까요. 우리의 옛것을 무조건 버려야 할 낡은 것들이라고 바라보는 시각이 팽배해지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 공연은 3월 2일부터 4월 22일(일요일)까지, 공연 시간은 평일은 오후 8시, 토요일은 3시, 7시, 일요일은 2시 6시에 있다고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 링크를 걸어둘테니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시고 참고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뮤지컬 서편제 홈페이지


서편제

장소
유니버설아트센터
출연
이영미, 이자람, 차지연, 김다현, 한지상
기간
2012.03.02(금) ~ 2012.04.22(일)
가격
VIP석 90,000원, R석 70,000원, S석 50,000원, A석 3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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