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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ter box

스스로 돌아보기

 아침에 일어나 그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음식을 입에 밀어 넣는다. 살기 위해 먹는 것과 먹기 위해 사는 것의 중간에서 먹기 위해 산다 쪽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내가, 무슨 맛인지 음미하지도 않고 그저 꾸역꾸역 밀어 넣는다. 그리고 유튜브를 켠다. 뭔가 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켜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습관처럼, 뭔가 없을까 하고, 마치 굶주린 동물이 사냥은 하지 못하고 어디 떨어진 먹이가 없나 하고 두리번거리며 배회하듯이. 그러다가 문득 하나의 영상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 영상을 재생했다.

 

 화자는 '나는 스스로를 너무 사랑하기에 스스로를 혐오했다'고 했다. 본인의 완벽주의 성향이 본인을 힘들게 했고, 그것이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자기혐오로까지 몰아갔다고. 화자가 예로 들었던 본인의 완벽주의적 성향은 나에게 크게 와 닿았다. 완벽하게 하지 못할 바에야 시작도 하지 않는다던지, 일을 하다가도 수틀리면 엎어버리고 치워버린다던지, 스스로를 칭찬하는 것에 인색하다던지. 하지만 그 자기혐오는 자기애에서 오는 것이며, 그 사랑을 조금만 다른 시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자기혐오를 멈추고 스스로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물론 내가 이 영상을 보면서 '아!'하고 새삼 깨달았던 것은 아니다. 이미 알고 있었던 이야기고, 여전히 고민인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한 번 언급을 해야겠다 하고 생각했던 것은, 최소한 세상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산 사람이 나 하나만은 아니었구나 하는 작은 위안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완벽에 대한 강박이 있다. 몇 달 전 수업 중에도 한 번 거기에 대한 고민을 토로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때 선생님께서는 내 손등에 어설픈 이모티콘을 그려주시고선 그걸 이번 주 내내 지우지 말고 가지고 있어 보라고 하셨다. 일견 이해는 갔다. 이런 못생긴 이모티콘을 손등에 가지고 있다는 불편함을 이겨내 보라는 말씀이셨겠지. 하지만 아마 선생님은 그것은 모르셨을 거다. 그 이모티콘을 일주일 동안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새로운 강박을 심어주셨다는 걸. 그와 같다. 나는 스스로가 완벽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그것은 단순히 생각을 넘어 강박에 가깝게 나를 옥죈다. 하지만 나는 결국 그 완벽의 기준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잦았고, 그것은 나를 실망시켰다. 나는 점점 내가 싫어지게 되었고, 그런 것이 30년이 넘도록 쌓여왔다. 이쯤 되면 미운 정도 정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정은 둘째치고 스스로를 온전히 믿지 못한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내 사랑의 종말도 마찬가지였다. 내 행동에서 굳이 스스로 허점을 찾고 그것을 곱씹으며 스스로를 힘들게 하고, 그것을 지적당하는 것을 못견뎌했다. 나는 완벽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며, 심지어 그것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둔다는 것이 나에게는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런 부분들을 들여다보게 된다는 사실이 나를 힘들게 했다.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상황을 종종 맞게 되었고, 타국에서의 생활이라는 큰 스트레스가 더해지면서 극단적으로 가시 돋친 태도를 보이게 됐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바깥에서는 한없이 정이 많고 따뜻한 사람이려고 노력했었지. 아마 그것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떠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이 아닐까, 하고 또 스스로에게서 원인을 찾아본다. 이 정도면 병이다.

 

 어쨌거나, 자기혐오는 최근까지도 나에게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아니, 어쩌면 내가 스스로를 너무 높게 평가하고 있기 때문에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나를 못마땅해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시점부터 이미 '혐오'까지는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말을 조금 순화해서, 스스로를 못마땅하게 여긴다고 하자. 중요한 것은, 이 스스로를 향하는 이 부정적 감정을 멈출 길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조금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나를 혐오했던 나를 용서하고, 인정하며 나아가서 따뜻하게 대해줄 수 있는 방법을. 아직 섣부르게 언어의 형태로 뱉어내기에는 아직 스스로도 정리를 해내지 못했기 때문에 말은 아껴야겠다, 고 생각하면서 또 이렇게 생각한다. 이것도 일종의 완벽주의가 아닌가, 하고. 그래, 확실히 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