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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숨쉬러 나가다

 얼마 전, 연극 한편을 관람할 기회가 닿았습니다. 물론 연극은 무료는 아니었지만 특이하게도 '자발적 후불제'라는 것을 시행하고 있었는데, 이는 연극을 보고 난 후 자발적으로 관람비를 내는 제도였습니다. 내는 사람이 무안하지 않도록 봉투를 나눠주고 그 안에 돈을 넣어 상자에 담는 형식이었는데, 마침 지갑에 현금이 그리 두둑하지 않아 연극 내용에 만족했던 것 보다 모자라게 내게 되어 아쉽기도 했습니다.


 이 연극은 '조지 오웰'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작가 조지 오웰은 1999년 영국의 BBC가 조사한 '1천년 이내 최고의 작가' 부문에서 셰익스피어, 제인 오스틴에 이어 3위에 선정된 인물로, '동물 농장'이라는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자신이 글을 쓰는 이유를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을 정도의 인물이니, 이 '숨쉬러 나가다'라는 작품도 결코 가볍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숨쉬러 나가다'는 '조지 볼링'이라는 인물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어찌보면 사소하기 그지 없는 일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험에 종사하며 너무도 평범하게 살아가는 조지 볼링, 그에게 아무도 모르는 돈 17 파운드가 생깁니다. 그는 이 17 파운드를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되고, '아내, 아이들, 전쟁을 예감하게 하는 소리들'을 피해 20년 전에 떠나오고 한번도 돌아가지 않았던 고향을 다시 찾기로 결심합니다. 아내에게 출장을 핑계삼아 거짓말을 둘러댄 다음 고향을 찾은 조지를 반긴 것은 고향이 아니라 낯선 어떤 곳이었습니다. 그가 바라 마지않던 '숨 쉴 공간'은 이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던 것이었지요. 현대 사회가 그에게서 앗아가버린, 거대한 물고기의 그림자가 춤추던 그 '고향'. 그가 다시 그 숨이 턱턱 막히는 일상 속으로 돌아오며 연극은 막을 내립니다.

 이 연극은 소설에 비하면 세세한 부분이 많이 모자랍니다. 소설은 소설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기 마련이지요. 연극은 소설이나 영화에 비해 시간적, 공간적으로 제약을 심하게 받지만 또 연극만이 보여줄 수 있는, 전해줄 수 있는 그런 현장감같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물론 시간이 짧은 만큼 책의 내용 전부를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는 없었겠지만, 이것 정도는 다루어 주었으면 하는 부분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배우들이 눈 앞에서 땀을 흘리며 움직이는 느낌, 그리고 귀에 직접 울리는 조지 볼링의 육성. 이런 것들이 제게는 충분한 대안이 되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연극에서 많은 것들을 느꼈습니다. 함께 보았던 아내는 큰 감흥은 없었던 모양입니다만, 저에게는 '숨쉬러 나간다'는 발상 자체가 너무도 와닿는 부분들이 많았고, 또 너무도 간절하고 절실한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숨쉬러 나가다' 라는 작품이 정말 널리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는, 저와 같이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는 반증이기도 하겠지요. 주변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내 속에서 커져만 가는 어떤 고민, 불안들.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숨통을 틀어막는 듯 느껴지는 답답함 속에서 우리는 과거의 행복했던 순간들, 마음의 안정을 주는 장소들을 떠올리며 숨통을 틔우고 싶다고 느낄 것입니다.

 현대의 사회가 앗아가버린 그런 낙원 같은 시간과 공간에 대해 갖게되는 밑도 끝도 없는 향수와 그리움. 조지 볼링이 느꼈을 허무함, 박탈감, 그 어떤 공허한 감정과 공감을 느끼게 되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즐겁고 유쾌하기만한 감정들은 아니지만 '나 혼자만 이런건 아니었구나'하는 일종의 안도감도 가져볼 수 있지 않을까요?



숨쉬러 나가다

장소
가톨릭청년회관 CY시어터
출연
이종무, 김승언
기간
2012.02.29(수) ~ 2012.03.18(일)
가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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