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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ter box

반드시 그래야 하는가?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도 인터넷 중독이다. 사용량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하루도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고 넘어가는 날은 없다.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찾는 것은 세면대가 아니라 핸드폰이 된 지 오래다. 뭔가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는 아니다. 깊이 고민해 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뭔가 자극을 찾고 싶어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제 아침, 초저녁에 잠깐 눈을 붙이고 깨서 또 습관적으로 유튜브를 켰다. 구독 중인 누군가의 업데이트 알림이 온 것도 아니었고, 찾아보고 싶은 뭔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습관적으로.

 익히 이름을 들어 알고는 있지만 언제나 듣기 불편한 팩트로 나를 때리는 피터슨의 영상이 보였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어제는 왜인지 한 번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영상에서 피터슨은 말했다. 우리의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쓸데없이 인터넷을 뒤지고, 도움도 되지 않는 유튜브 영상들을 보면서. SNS에 대한 피터슨의 태도야 모르는 사람이 더 적을 테지. 어쨌거나 그는 또 반박할 수 없을 언변으로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왜 네 인생을 낭비하느냐고. 나는 이미 영상에서 피터슨이 청자로 대하고 있는 20대는 아니었고, 이제 곧 30대도 아니게 될 테지만, 뼈아픈 구석이 있었다.

 어떤 학생 집단을 두고 피터슨이 물었다고 한다. 하루에 10시간쯤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사람 손들어 보라고. 그랬더니 예닐곱 명이 손을 들더란다. 딱히 어떤 행위가 시간을 낭비하는 일인지에 대한 언급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그들은 자신의 하루에서 10시간 정도를 ‘낭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했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그러면 6시간 정도를 낭비하는 사람 손들어 보라고. 그랬더니 대다수의 학생들이 손을 들었다고 했다. 그 교실에 앉아서 피터슨의 말을 듣고 있던 학생들 대부분이 하루에 6시간 이상을 낭비하고 있다고 생각했단다. 무엇이 낭비인가에 대한 언급이 없었는데도 그랬다고 한다는 건, 그들도 이미 스스로의 행동이 낭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말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6시간 이상을 낭비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건 어떻게 들으면 참 놀랍고 충격적이었다.

 그 영상을 다 보고 나서는 복잡한 심경이 되었다. 최근의 나를 옥죄고 있었던 감정의 뿌리에 뭐가 있는지 조금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됐지만, 한 편으로는 다른 의문을 가지게 하기도 했다. 과연 우리의 삶에서 ‘낭비’라고 정의할 만큼 낭비되는 시간이 있는 걸까? 우리는 반드시 생산적이어야 하는가? 사람이 산다는 게 대체 뭐길래, 그렇게 열심히 생산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걸까? 일전에 나는 침대에 누워 잡생각을 하다가 그런 생각을 한 번 떠올린 적이 있었다. 우리의 삶이라는 건 애초에 반드시 달성해야 할 목표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내는 것 자체가 목표고 태어난 이유가 아닐까? 그러면 내가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서 옳고 그르다는 판단은 어떻게 해야 된단 말일까? 무엇을 하든, 그 순간순간을 살아내고 있다면 우리는 잘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본다면, 피터슨이 말한 낭비는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까. 나는 내 삶의 일부분에서 다른 사람이 시간을 들여 만들어낸 무언가를 보면서 즐겁거나, 슬프거나 혹은 스스로 뭔가를 더 생각해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것은 과연 낭비라고 말할 수 있을까?

 반드시 어때야 한다는 것은 오랜 시간 나를 좀먹어온 강박이다.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언제나 내 마음대로만 되지는 않는 것이 내 마음인지라, 아직도 힘들고 고되다. 내가 당장 목표로 삼고 있는 어떤 위치를 달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시간은 아닐지라도, 내가 자유롭게 느끼고 즐기며 보내는 시간을 너무 폄하하고 쓸모없는 낭비라고 스스로 규정지어 스스로를 불편하게 만들지는 말자고 생각했다. 세상에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은 없다. 무엇이든 그럴 수도 있는 법이다. 무엇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