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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내가 살인범이다 (Confession of Murder, 2012)



 아, 정말로, 너무 재미있게 봐서 아직도 가슴이 두근두근 하는 느낌입니다.

 사실 한국 영화에 대한 편견이 살~짝(그저 조직 폭력배 이야기, 웃기는 장면 조금, 억지 감동 약간 넣어 버무린) 편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최근들어 그 편견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얼마전에 광해를 보고 왔거든요. 극중의 인물이 했던 대사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더 즐겁다'는 말이 딱 맞아 떨어지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광해를 너무 즐겁게 보고는 '와 한국 영화도 만만히 볼게 아니구나' 하고 있던차에 이번 시사회 기회를 얻어 '내가 살인범이다'를 보고 나니, 제가 가진 편견이 부끄러워집니다.

 영화의 내용에 대해서 언급을 하면 영화를 보실 분들에게 큰 실례가 되겠지만, 가볍게 이야기를 하자면, 이 영화는 살인범과 형사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누구나 예상하실 수 있겠지만, 이 이야기에는 반드시 반전이 필요합니다. 이 반전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생각을 하실 수 있겠지만, 저로서는 충분히 보기 즐거운 반전이었습니다. 여느 영화가 그렇듯이 영화가 끝나고 나면 그 반전을 위한 준비 단계들이 착착 보이지만, 영화를 보는 중에는 저도 모르게 영화의 이야기가 이끄는대로의 예상을 하게 되고 말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형사와 범죄자가 등장하는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긴장감 넘치는 추격 장면도 좋았고, 정재영씨의 찰진 대사도 좋았습니다. 박시후씨의 그 웃음은 뇌리에 콱 와서 박혔어요, 정말 멋있었습니다.

 친구들끼리도, 연인들에게도 추천하지만, 결국 범죄라는 행위 자체에 대한 이야기와 그 범인에게 주어지는 형벌에 대한 이야기니까 불쾌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금만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신다면 매우 즐겁고 좋은 시간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이하부터는 약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한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과연 연쇄 살인범을 살려서 법의 심판을 받게 하는 것이 진정한 복수인가 혹은 그 숨통을 당장 끊어버리는 것이 옳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많은 영화나 만화의 주인공들 중에는 법이 심판하지 못하는 범죄자를 단죄하는 인물들이 많이 그려지고 있고, 그런 영웅들이 영웅으로 대접받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법이라는 그물은 작은 고기는 놓치지 않지만 정말로 커다란 상어는 놓치고 마는 허점을 분명 가지고 있나봅니다. 그런 그들에게 철퇴를 내리치는 인물. 하지만 그 반대편에 서서,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들이라 하더라도 결코 목숨을 상하게 하지 않고 법의 심판을 받게 하고 마는 영웅들도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는 어떤 절제와 초인적인 인내심 같은 것들이 비쳐 보여기 때문에 대단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정말로, 그 초인적인 능력이나 재력보다는 그들이 눈앞에 무력화된 흉악한 범죄자를 놓고도 죽이지 않는다는 것이 더 영웅적으로 보일 정도랄까요. 어쨌거나, 영화는 그 경계선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악랄한 살인범을 눈앞에 두고 있는 희생자의 유가족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위안은 무엇일까요. 범죄자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죽는다면, 만족할 수 없을까요? 그 살인범이 일분 일초라도 같은 공기를 마시며 같은 하늘 아래 존재하는 것이 못견디게 힘들어서, 그만 자신의 손으로 죽이게 된다면, 그 가슴에 진 응어리가 가장 많이(어떤 방법을 취하더라도 그 큰 응어리가 다 풀어지지는 않겠지만) 풀어질까요?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의 마지막 모습은 그 응어리가 상당히 풀어진 것 같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영화를 보고 난 제 심정은 시원하기도 했고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영화를 보신 후, 극장을 나오시면서 여러분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되실지 참 궁금해지는, 그런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